"민주주의 만세"를 외친 김지하 시인이 5월 8일 별세했습니다. 故 김지하 시인은 최근 1년간 암 투병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2년 5월 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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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
김지하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입니다. 본명은 김영일로 김지하는 지하(地下)에서 따온 필명입니다. 처음 쓴 필명은 성씨 없이 그냥 지하였지만, 하도 주변인들이 이름 대신 부르다 보니 성을 붙이고 한자까지 바꿨다고 해요.
목포산정초등학교, 중동고등학교,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해서 2008년부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로 있다가 2013년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합니다.
반독재 투쟁 시절
4.19 혁명 이후로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1964년 6.3 항쟁에 참여했다가 수감되어 4개월간 복역합니다.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으며, 김수환 추기경 역시 이러한 모습을 대단히 여기는 동시에 많은 걱정을 하기도 했죠.
김지하의 시는 초기 <오적>으로 대표되는 재기 넘치는 풍자 정신을 보여주는 시편과 감옥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중기의 시들을 통해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생명사상
김지하는 70년대 후반 5년여간의 옥중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서적들을 탐독하였고, '생명사상'을 깨우쳤다고 합니다. 재판이 끝나고 책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김지하는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고 해요.
선불교, 동학, 생태학 등의 책을 섭렵했는데, 인간과 삶의 진화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생태학에서 시작했지만, 더 깊은 내면적 지식과 무의식적 지혜를 갈구하게 되었고 그때 접한 것이 선불교 사상이었죠.
김지하의 원래 종교는 천주교였지만, 옥중에서 선불교에 크게 경도되어 선불교 관련 경전들을 읽으며 영적임 깨달음을 얻어갔습니다.
출감 이후 김지하는 장모인 박경리 선생의 도움으로 원주에 거주하며, 이후 80년대 걸쳐 여러 종교의 생명 존중 사상을 혼합하여 수용하고 생명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출소 이후, 그는 천주교, 선불교, 원불교, 도교 등 생명 존중과 관련된 각종 종교들을 섭렵해 갔죠.
김지하는 생명사상과 관련된 여러 종교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했는데 이것이 개별 종교들이 오히려 김지하를 못마땅해하고 그를 배척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이후 그가 보수적 성향을 보이자 진보진영도 그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1991년 조선 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진보진영과 적대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마무리
이상 故 김지하 시인의 소개를 마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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